일상과 기억
문득 생각난 과외이야기
hunti
2009. 10. 19. 15:31
예에전에, 한창 물불 안가리고 과외알바를 하던 시절에
원양어선 선원의 [한글]과외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한 삼십 중반 정도 되는 사내였는데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여 아직 한글을 깨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부산 송도 암남동 산자락에 살림을 차려놓고,
아내는 아마도 업소에 나가는 여인인 듯.
일 년에 겨우 두어 달을 집에서 지낼 뿐
나머지는 계속 배를 타는 사람과, 그 기간을 혼자 지내는 아내였습니다.
어쨌든, 일주일에 세 번씩 한글 깨치기 공부를 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읽기와 쓰기를 익혀나가던 중
어느 날
아내가 쓴 글이라면서 일기장 비슷한 노트를 보여줍니다.
이런저런 잡문들이 쓰여져 있는 노트...
제일 마지막 장을 넘기니
이런 글이 있더라구요.
"평생을 한 남자에게 얽매여 살기는 싫어."
허이구우.....
그 글을 보는 순간 제가 다 가슴이 콱 막히는....
여인네는 무슨 의미로 그 글을 남겼는지.
사내는 그 글을 정말 읽지 못하고 나에게 보여준 것이었는지.
사내의 출항일이 가까워서 과외는 곧 끝났고
그 두 사람의 이후 이야기는 들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 둘은 예상대로 끝내 헤어졌을까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그렇게 계속 살아갔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