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기억

선생님의 책을 받았습니다.

hunti 2008. 8. 13. 12:39


1.

몇 주 전 통화 :

"선생님!"

"어, 동언이가? 왠일이고?"

"헤헤, 선생님 더운데 별고 없으신가 해서예-"

"별일없다"

"근데 선생님, 혹시 책 보내셨습니꺼?"

"어? 보냈는데? 아직 안받았드나?"

"아우, 우체국에서 또 사고칬나보네... 선생님, 책 못받았는데예"

"그래? 그럼 다시 보내조야겠네. 등기로 보내주야겠다"

"헤헤 선생님 고맙습니더. 책보내주시라꼬 전화드린 거는 아인데~
 뭐, 부탁드맀으모 하는 것도 있고....."

"와? 니 결혼하나?"

"어? 선생님 어떻게 아셨습니꺼?"

"주례 서달라꼬?"

"어?어? 선생님 어떻게 아셨습니꺼??"

"흐흐흐~"

"제가 전에도 말씀드렸잖습니꺼, 제 장가는 선생님이 보내주셔야 된다꼬예 ㅎㅎ"

(이하생략)



이렇게 오랜만에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마침 서울의 아들들을 보시러 와 계시다는 말씀에 바로 뵐 수 있었습니다.

원래 쪼그마하시던 몸집이 왠지 더 줄어든 듯하고, M자로 벗어진 머리는 이제 흰머리가

많이 덮였습니다만 예의 거침없으신 몸놀림과 카랑카랑한 음성은 여전하셨습니다.

맛있는 거 사드리겠다고 말씀드려도 끝내 양재동 골목의 허름한 낙지구이집으로 들어가신

선생님은, 기분이 좋으신지 소주 한 잔과 더불어 끊임없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십니다.

학교이야기, 시인모임 이야기, 아들이야기, 손주이야기...... 그리고 노년의 프로젝트인

밀양의 과수원 이야기까지 -

내년 늦은 봄엔 저도 매실이랑, 살구를 한가득 얻어갈 수 있겠습니다 ㅎㅎㅎㅎ -




제가 내내 꿈꿔왔던,

결혼식 주례를 선생님이 서시는 장면을 올해 가을엔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십수년 전의 고등학교 국어교실로 돌아가서 또 한 번의 재미난 수업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2.

오늘 집에 도착해 보니 드디어 책이 도착했습니다.

시조시인이신 선생님의 글을 정말 오랜만에 다시 보겠다는 기쁨에 얼른 뜯어보았습니다.

한 권은 수필집, 또 한 권은 퇴임기념문집.....

아니 그럼 그 때 이후로 시집은 아직 더 안내신 건가...?

내일 여쭈어야겠습니다.

얼른 시를 쓰시라고 ㅎㅎ....


어쨌든 간에

내일부터 한동안 지하철 속에서는 계속 이 책들을 손에 들고 있을 듯 합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