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설

아주머니께

hunti 2010. 10. 15. 11:31



 

그러게 좀 자제하셨어야지요
저도 뭐 굳이
잘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순간엔
어쩔 수 없이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단
말이에요.

날이 너무 어두웠잖아요
밤 열한 시가 다 된
어두컴컴한
그것도 음침하게 바람 불어오는
을씨년스런 다리 위에서

정말 아니잖아요

갑자기 길을 막는 건
돌연히 닥쳐 드는 건

신경쓰이는 업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퇴근하던 길
그나마 몇 술 떠넘긴 저녁밥이 체해서
연신 그윽- 그윽-
트림하던 길
어깨에 멘 가방이 자꾸 미끌려내려와서 불편스럽던
귀에 꽂은 이어폰에선
때마침 신경 긁는 고음이 비져나오던

그 길에서요

난데없이 얼굴 가까이 대며
뭐라고 하셨잖아요
이어폰 빼며
제가
"네?" 하며
되물었잖아요

아주머니는
다시 말씀하셨잖아요

 

"예수 믿으세요"

 

......

어쩔 수가 없었어요
당황스러웠어요
말을 거를 틈도 없었어요

절실했을 마음
간절한 바램
선한 의도

그런 것 생각해 드릴 틈이 없었어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도 당황했어요
......

 

"안해요"

 

그니까요....

다음엔 그러시지 마세요
뭐 서로서로
조심하자는 거죠

아주머니도 뻘쭘하고
저도 새삼 미안하고
이게 뭐예요

솔직히 어둔 밤길 탓만 할 수는 없잖아요
솔직히 인적드문 다리 때문만은 아니잖아요


뭐, 그렇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