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요즘 시'에 해당되는 글 23건

  1. 2017.12.04 약봉지
  2. 2017.12.04 라쿤
  3. 2016.04.12 집으로 갈 때
  4. 2015.02.26 부산 가는 케이티엑스
  5. 2015.02.26 차창 밖
  6. 2015.02.26 갑시다
  7. 2013.04.26 반항기
  8. 2011.06.03 삼계탕을 먹다가
  9. 2011.01.17 에스컬레이터
  10. 2010.12.24 퇴근길

약봉지

글/요즘 시 2017. 12. 4. 00:57

약봉지 땅에
떨어져 있다
누가 흘렸나 아님
버렸나
주황색 알약과
녹색과 미색 섞인 캡슐
흰색 작은 또 알약
식후 30분에 먹으라고 돼 있는
누가 혹시나
이 약 없으면 안될
그 누구가
약을 흘렸나
지겨웠었나

강박의 일상
무너지는
스러지는
어느 순간 숨이
턱 막힐 만큼
뜨거운 것이 치받는
손 휘저어 버릴 만큼
놓아 버리고 싶을 만큼
서울역 지하도
가로놓은 돌길 한 가운데
던져 버렸나

아직 뜯지 않은
금방 놓인 약봉지
멈추고 서서 물끄러미

------------------- 171127

Posted by hu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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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쿤

글/요즘 시 2017. 12. 4. 00:55
라쿤 라쿤 라쿤
저것들
공중에 둥 둥 떠 다니는
중국
아니면
덴마크 핀란드
어디서 온 것들이든 
때깔은
기막힌 것이
한 올 한 올
하늘거리는
살았을 적보다
더 윤기 나도록
생생하도록
사후처리가
기막히지 않나
생시에 없을
씻기고
빗기고
끔찍이
끔찍하게
목덜미 시큰한

어차피
같은 꼴이다
부지불식간
목덜미 잡혀
가쁘게 숨 몰아 쉴 테다
같은 목숨이다
그러니

고개 돌리라
붉게 물든 눈으로
내려다 보지 말아라
좁게 이어진
지하 통로
줄지어 고개 숙인
사람들
목덜미 뒤로 둥 둥

------------------ 20171203

Posted by hunti
,

집으로 갈 때

글/요즘 시 2016. 4. 12. 14:27

 

집으로 갈 때

지하 열차

흔들려

어깨

흐트러지고

어느 순간 귀에 꼈던

이어폰

음색

비틀어 질 때

 

이유도 없이

 

펼쳤던 책 덮으며

문득

오래된 기억 떠오른 듯

눈시울이 뜨거워 진다

 

어떤 세상과 세상

어떤

우연과

우연의 틈

그 사이에서 난

이렇게 숨쉬나

 

열차

아무 일도 없는

 

흔들림 속

난 서서

고민에 잠긴다

 

 

--------------------------------# (160412)

 

 

Posted by hu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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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가는 케이티엑스

애기랑 아빠랑

사람구경 하지요

 

애기는 이모 얼굴 보고요

아빠는 이모 다리 보고요

 

애기는 이모 앞태 보고요

아빠는 이모 뒤태 보고요

 

부산 가는 케이티엑스

애기랑 아빠랑

 

사람구경 아주 씐이 나지요

 

 

---------------------#  (140315)

 

 

 

 

Posted by hu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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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 밖

글/요즘 시 2015. 2. 26. 20:22

 

돌아가는, 밤중의 열차

차창 밖에 노오란

가로등 불빛이

아직도 그 빛이라서

 

다행스러웠다.

 

내게 머물렀던 것들은

언제까지

내게

머물러 줄 수 있을까

 

기차는 달리고

생각은 여전히 창에 기대어

지나버린 잔상을

좇아 헤맨다

 

 

--------------------------------#  (150221)

 

 

 

Posted by hu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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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시다

글/요즘 시 2015. 2. 26. 20:20

 

갑시다

바다로.

 

이것은 물론 경험해본 사람만,

핏속에

그런 피가 흐르는 사람만

느낄 수 있는 별스러운 감정이겠지만

 

일단 갑시다.

쉼 없이 뒤채이는 바다,

거기엔 뭔가

알 수 없는 뭔가가

한마디로 말할 수 없는

뭔가가

거친 숨을 내쉬고 있으니.

 

그런 감상을,

그런 바다를 보지 못한 사람은

어찌할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별스러운 감정이겠지만

 

일단 갑시다.

가 봅시다.

 

그럼 알테니

몰라도 알테니

 

시월의,

그 끝자락의 끄트머리

어디라도 좋소,

그 바다로

갑시다.

 

 

--------------------------------# (141024)

Posted by hu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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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기

글/요즘 시 2013. 4. 26. 18:00



반항하고 싶은 졸라게
개기고 싶은 뭔가 되게
억울한 느낌이 드는
내 반항의 역사는 올해로 마흔 해 째다

안그렇게 될 줄 알았다 적어도
나이 마흔 정도 되면
휘둘리지
않을 줄 알았다

세상이 연해지든
내가 단단해지든
뭐 그렇게 되어서

어린 날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반항기는 곧
필요없는
쓸모없는 이를테면 꼬리뼈처럼
흔적만 남은

그럴듯하게 성장한 어른의
아스라한 먼 기억이 될 줄
알았다

발육이 덜 된 주변머리로
강변하던
덜익은 이유 따위는
어른이 되면
정말 때가 되면 사라져
줄 줄 알았다

변하지 않는 세상
탓 아니
변하지 못한
내 탓

어쨌든
그렇다는 거다
지금 반항하고 싶다는 거다 

Posted by hu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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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그만 뜯어라
내 살점

살점이었던
생명이었던

코 끝 더운 공기
혀에 감기는 단내에
식도를 그득히 채워 넘기는 포만감까진
그렇다 치더라도

어쩌면
몸 속 돌고 돌아
또다른 생명
그 기적같은 이야기를 시작하는 씨앗이
될 수 있겠다 치더라도

그리 기 쓰고
훑어낼 것 까지는
검은 뼈 사이사이 벌려 가며
솎아낼 것 까지는
없지 않으냐
한 조각 티끌 정도는

남겨 줘라
내 살점

이 넓은 우주에서
어느 구석 한 줌 의미로 생겨났는지
나도
나를 말할 수는 없다

짧은 햇빛 마흔 아홉 날
숨쉬고
피 돌게 하며
다만 내가 있었음을 증명할
옹색한 증거

어쩌면
그마저 될 수
없을 지도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러하니

손톱만큼 남은
내 그것
그만 좀
발라내란 말이다



Posted by hu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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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컬레이터

글/요즘 시 2011. 1. 17. 18:01



월요일 아침
지하철을 내리고 계단을 오른다
에스컬레이터는
내어맡긴 내 몸을 끌어 이끈다
등줄기로 흐른 땀
밖은 여전히
바람이 시릴 것이다

어깻죽지는 이미 뻐근하다

고개를 든다
한칸 위
여자의 옷

털실로 짠 굵은 모노톤 패턴
들여다 본다

무늬는 이어지고
이어진다
씨실, 날실은
연결되고
연결된다

나는 골똘하게
들여다 본다

어깻죽지가 잠시 풀린다


에스컬레이터가 끝난다














Posted by hu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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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글/요즘 시 2010. 12. 24. 15:24


 

 

..... 지하철 문이 열린다.

가방을 메고, 이어폰 음량을 약간 올리며 층계를 오른다.

어깨를 치고 지나가는 사람, 사람들.

다들 바쁜 걸음,

귀가의 행렬이다.

 

거리는 차갑다.

그 공기 사이를 비집고

속도를 내어 지나가는 자동차들의 소음

미술학원을 나서는 아이들의 왁자한 잡담

무겁게 여닫히는 두꺼운 유리문 소리

비틀거리며 옆을 지나치는 자전거의 경적.....

 

난 보폭을 넓힌다.

아까 접질린 왼쪽 무릎이 살짝 시큰거리지만

괜찮다.

뺨을 스치는 바람은 정확하게

이 계절만큼의 신선감과

상쾌함을 준다.

 

큰 길을 지나 어두운 골목,

뒤를 따르던 그림자가 앞장을 선다.

그 옆에 또 하나의 그림자,

그도 또한

나름의 목적지가 정해져 있을 것이다.

 

다리를 건너고

찻길을 지나고

살얼음이 언

보도블럭을 걷는다.

집이

가까워진다.

 

누군가가 미끄러운 입구에 박스를 깔아놓았다.

비번을 입력한다.

문이 열리고

계단을 오른다.

인기척에

전등이 켜진다.

 

나는 엠피쓰리를 끈다.

한발 한발

계단을 오른다.

전등이 또 하나 켜진다.

공기는 이미 따뜻하다.

 

목도리를 풀고

외투의 지퍼를 내리며

나는

초인종을 누른다.

 

설핏, 어디선가

고소한 찌개냄새를 맡은 듯 하다.

치르륵- 하는

새 소리도 들린 것 같다.

 

문이 열린다.

빛이 쏟아진다.

이마와 볼 전체로

온기가 퍼져온다.

 

 

 

“어서 와”

 

 

 

열린 문 사이로 손을 내밀며

아내가

환하게 웃는다.

 

집에,

도착했다.

 

 

 


Posted by hu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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