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문이 덜걱거려서
온 밤을 설쳤는데
아침에 깨어
살펴보니
채워졌던 것들 쓸어내 버려서
선득선득하게
빈 속이 덜걱거린
소리더라
바람에 문이 덜걱거려서
온 밤을 설쳤는데
아침에 깨어
살펴보니
채워졌던 것들 쓸어내 버려서
선득선득하게
빈 속이 덜걱거린
소리더라
문득
한 발걸음 물러나
하늘을 보았네
허공은 파랗게 호흡하고
나는
주어진 만큼의 무게로
그 곳에
서 있었네
나는 허공을 만졌고
대기를 만졌고
나를 느꼈네
두 손에
가득히
난 나를 호흡했네
나는 회의한다
친구들 사이에 끼어 서 있던 것에 대해
회의한다
나는 어울려 술을 마신 것에
대하여 회의한다
싱겁게 흘린 농담에 대해
회의한다
나를 밀쳐내던 그 거리에
서 있었던 것을
회의하고
내가
보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
회의한다
듣고 있었던 것에
맡고 있었던 것에
생각하고 있었던 것에
대하여 회의한다
내가 지었던 표정에 대해 회의하고
내가 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회의한다
집으로 돌아온 것에 대해
회의한다
숨쉬는 것에 대해
회의한다
나에 대해
회의한다
끝내 나는 알지 못하리
저 하늘을
파랗게 물들이는 슬픔의 까닭
굽이쳐서 소리마저
삼켜 버리는
수중의 아득한 어둠
붙잡을 듯 스쳐 지나가는
바람의
투명한 그리움
무겁도록 검게
침묵하는 땅
나는 끝내
하나되지 못하리
커다란 들쥐 한 마리
들쥐구멍 나와
덜컹덜컹 달리네
부릅뜬 눈 솔개 한 마리
단숨에 날아 내려
날카로운 발톱
콱
찍어 올리네
......
꼬랑지는 잘려
진물 고름
비쩍 말라붙었고
오그라든 네 발
허둥허둥
충충한 눈깔 잔뜩 겁먹어서
두룩 두룩
축 처져 고픈 배때기
오지게 찍혀
대번에
번지는
저런
저
핏빛
굴 속엔
눈도 안뜬 핏덩이들
웅크렸는데
.....
어느 봄날
들쥐 한 마리
커다랗게
높다란 가지
흔들어 오는
저 바람결에 그대
몸을 실었나
덜컥
내려앉는 가슴
마냥 그대를
난 놓지 않았나
아마
버릇일 테지
휘파람 휘휘 불며
온 산 젖어드는
저녁 산 빛
눈이
또 시렵네
저 메트로놈이란 놈은
한짝 뿐인 어깨로
시키기만 하면
잘도 손을 흔든다
잘 가세요
잘 가세요
표정하나 안 바꾸고
잘 가시라니까요
백번이고 천번이고
손을 흔든다
남은 한 번 하기도 힘든 일인데
정말
대단한 놈이다
에이
개새끼
그렇게 살다가 죽어라
오늘도 늙은 거미 한 마리 거미줄에 올라앉아
의뭉스런 눈길을 보낸다 소소한 바람 나뭇잎을
긁고 지나가고 거미줄이 출렁거릴 때마다 늙은
거미도 다리 여덟을 허둥거린다 바라보는
내 눈동자도 따라서 허둥거린다......
두 눈 감은 채
하루를 흘려보내지
먼지 낀 동공
아무도 몰래 물 길어와
정수리에 부어보곤
한숨을 쉬지
무디어진
몸 한 귀퉁이
묵은 환부 한 조각 떼내어서는
산기슭에 오르지
바위 밑 살펴보고
땅 한번 퉁퉁 굴러보고는
맹렬히 타들어가는 그것
휘- 던져놓고
기다리지
아무 산짐승
물어가기를 몰래 기다리지
몸 속 무거운 것들
하나씩
하나씩
떼어 보내면
언젠가
내게 새살
돋는 날 올까
두 눈 감고
난 구석진 그늘 밑
웅크려 기다리지
별이 하얗던 밤이면
그대 울었겠지
그댈 위해
난
울어줄 수가 있었는데
언제나
나는 욕지거리하고
혼자 그댄 울었겠지
오늘밤 하늘엔
구름 깔리고
언젠가
그대 떠난 어느 날
감췄던 폐부 드러내고는
나도
울겠지
내가 아무리 잘났어도
세상을 삼키지는
못하겠지.
하지만
내가 그토록 못났다 해서
세상이
날 삼키지는
더욱
못할껄